Jordan
11
조던의 대담한 컴백 스니커즈.
충격적인 발표
1990년대 초, 조던 브랜드는 탄탄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고, 상징적인 농구화 라인은 처음으로 두 자릿수 판매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3년, 에어 조던 9의 출시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이 신발의 전설적인 이름을 딴 마이클 조던이 프로 농구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나이키와 조던 브랜드의 많은 사람들이 이에 충격을 받았고, 일부는 1994년에 출시될 10번째 제품을 끝으로 에어 조던 라인을 접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유명 디자이너이자 조던의 충실한 조력자인 팅커 햇필드였습니다. 그는 조던 스니커즈의 유산을 미래로 이어갈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발은 마이클 조던의 농구 복귀를 상징하는 동시에 모든 스니커즈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거부할 수 없는 조던 11로 거듭나게 됩니다.
중요한 회의
에어 조던 11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였던 켄 블랙을 비롯한 많은 브랜드 전문가들이 팅커와 함께 에어 조던 11을 제작했습니다. 1993년 말, 그와 팅커, 나이키의 임원 하워드 "H" 화이트는 마이클 조던과 함께 새로운 운동화에 대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농구 선수였던 조던은 햇필드 및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수많은 시그니처 신발을 제작하면서 이 과정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이들은 애리조나 콘도의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조던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부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완전히 솔직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완성된 디자인이 아닌 제안된 컨셉을 보여주는 그림과 자료를 조던에게 제시했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나일론부터 질감이 있는 메시, 반짝이는 페이턴트 가죽까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AJ11의 전반적인 핏과 느낌에 대해 조던의 승인을 얻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조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턱시도와 함께 신을 수 있는 스타일로 신발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조던은 턱시도를 즐겨 입는 스타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조던의 요청에 따라 햇필드는 정장 차림에 잘 어울리는 대담하고 대담한 농구화, 고성능 기능에 세련되고 우아한 외관을 갖춘 에어 조던 11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다
1994년 첫 달 동안 농구화 제작에 매진하던 조던은 아들이 야구를 하기를 항상 꿈꿔온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합니다. 조던은 클리티드 버전의 조던 9를 신고 마이너리그 야구팀 버밍엄 배런스에서 뛰다가 후반기에 스코츠데일 스콜피온스로 이적했습니다. 최고급 농구화 생산으로 유명한 조던 라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불과 몇 달 후 조던의 놀라운 컴백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반전은 선수와 그의 시그니처 스니커즈 모두를 부활시켰고, 그 과정에서 햇필드가 조던 11을 제작하는 데 쏟은 노력과 생각, 혁신이 입증되었습니다.
"내가 돌아왔다"
1995년 3월 18일, 마이클 조던은 "내가 돌아왔다"라는 간단한 멘트와 함께 NBA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정규 시즌 막바지에 에어 조던 10을 신고 시카고 불스에 복귀했지만, 불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조던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신발, 즉 스니커즈 문화의 지형을 영원히 바꿀 새로운 신발을 신어보게 됩니다.
기다릴 수 없는 신발
조던은 출시 예정일 몇 달 전인 1995년 봄에 새로운 시그니처 신발 한 켤레를 받았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관행이었으며, 조던은 새로운 디자인을 일찍 받아보지만 대중 앞에서 신을 수 없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어 조던 11을 받은 순간, 그는 이 신발에 매료되어 가장 먼저 신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참지 못했습니다. 1995년 5월 7일, 시카고 불스와 올랜도 매직의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1차전에서 이 스니커즈가 코트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특히 신발 전체를 감싸는 반짝이는 검은색 표면의 광택이 나는 페이턴트 가죽 머드가드 등 파격적인 외관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아래에는 발 전체를 감싸는 에어 쿠션으로 채워진 흰색 Phylon 폼 미드솔이 있었습니다. 햇필드는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농구 코트의 거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고성능 기술로 가득 찬 신발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드솔과 아웃솔 사이에 탄소 섬유 플레이트를 배치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 에어 맥스 1을 통해 신발의 기술 부품을 드러내는 것의 힘을 발견한 햇필드는 가볍고 지지력이 뛰어난 생크의 사용을 보여주기 위해 AJ11의 아웃솔을 부분적으로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콩코드 컬러웨이의 이름을 딴 다크 콩코드 퍼플 부분을 앞발과 뒤꿈치 아래에 배치하고, 헤링본 그립 라인으로 스니커즈의 접지력도 높였습니다. 갑피에는 흰색 탄도 나일론 메시를, 뒤꿈치에는 흰색 가죽을 더하여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정교한 영감
에어 조던 11에 사용된 소재의 조합은 이전 제품보다 더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반응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아한 블랙과 화이트의 외관은 조던이 원했던 대로 정장 차림에 이상적으로 어울립니다. 실제로 햇필드는 조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르마니와 프라다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에서 영감을 받아 신발의 깔끔한 브랜딩 효과를 디자인했습니다. 흰색 메시 소재의 텅 위에 점프맨과 조던 텍스트가 흰색으로 새겨진 검은색 천 밴드, 발등에 조던이 농구 복귀 후 즐겨 신었던 야구 유니폼 등번호 45번, 측면 뒤꿈치에 검은색 점프맨 로고가 새겨진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1995년 말 일반 출시 당시 조던은 기존의 23번을 신는 것으로 돌아갔고, 이에 따라 신발도 변경되어 45번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몇몇 레트로 모델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항적인 후퇴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이 진행되면서 조던 11의 놀라운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2차전에서는 마이클이 살아나면서 불스가 38점을 올리며 반격에 성공해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조던이 벤치에 앉아 경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카메라가 조던의 트레이너에 초점을 맞추자 해설자들은 "흑백이냐, 백인과 흑인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이는 겉이 흰색인 농구화를 금지하는 NBA의 플레이오프 규정을 언급하는 무의미한 발언이었습니다. 나머지 불스 선수들은 팀 컬러에 맞춰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검은색 신발을 신었고, 조던은 1985년 스니커즈 라인의 시작을 알린 금지된 AJ1 컬러웨이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첫 두 경기에 대한 벌금을 물게 됩니다.
언론의 관심
조던은 3차전에서 페니 하더웨이의 나이키 에어 플라이트 원을 개조해 신고 돌아왔고, 나머지 준결승에서는 다른 에어 조던 11 컬러웨이로 바꿔 신었습니다. 올 블랙 컬러의 갑피가 리그 운영진에게 더 잘 어울렸고, 이번에는 코트사이드 리포터인 아마드 라샤드의 신선한 코멘트를 이끌어냈습니다. 카메라가 조던의 검은색 AJ11을 확대하자 그는 농구화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페이턴트 가죽과 뒤꿈치에 자신의 야구 유니폼 등번호인 45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조던이 시리즈 첫 두 경기에서 착용했던 콩코드 컬러웨이를 신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조던이 신던 신발을 집에 가져가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100피트 덩크슛
안타깝게도 시카고 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4승 2패로 패했지만, 조던의 새로운 시그니처 신발에 대한 엄청난 과대 광고는 결국 성공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조던이 6경기 중 4경기에서 개인 최다 득점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을 회복한 것도 한몫했습니다. 조던 브랜드는 이를 바탕으로 마이클이 매우 높은 농구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담은 기억에 남는 100피트 덩크 광고를 통해 엄청난 슬램덩크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이클은 후프에 매달린 채 시점이 전환되면서 바닥으로 사라지는 신발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바뀌었고, 그의 발에는 에어 조던 11 콩코드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컬러웨이
1995년 말 출시 당시 조던 11은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다른 농구화와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에 강력한 기술력으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트레이너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조던의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으며 캐주얼 스니커즈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블랙과 화이트 콩코드와 함께 곧 새로운 컬러웨이가 등장했습니다. 첫 번째는 컬럼비아로 알려진 디자인으로, 대부분 흰색에 브랜드와 밑창에 컬럼비아 블루로 포인트를 준 것이었습니다. 조던은 95-'96 정규 시즌 내내 콩코드를 선호했지만, 1996년 2월 올스타전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이 새로운 컬러웨이를 착용했습니다.
전설적인 브레드와 또 한 번의 우승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오프와 브레드로 동시에 알려진 블랙과 레드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컬러는 초창기 에어 조던 1 출시 모델 중 하나에 등장한 덕분에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에어 조던 11 에디션 역시 이 클래식 모델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장은 이 유명한 컬러웨이를 손에 넣으려는 열성적인 스니커즈 애호가들로 넘쳐났고, 일부 매장은 단 몇 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조던이 이 신발을 신기도 훨씬 전의 일로, 조던은 4월 26일부터 시작된 그 시즌 플레이오프를 위해 이 신발을 아껴두었습니다. 조던의 계획은 팀 전체가 검은색 신발과 양말을 신고 경기에 출전하여 강력한 단결력을 발휘하고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리한 시청자들은 조던의 AJ11에 빨간색과 흰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여 조던의 불스는 마이애미 히트를 단 3경기 만에 탈락시켰습니다. 조던은 이 중 2경기에서 득점 1위를 차지했고, 팀이 다시 한 번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파이널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조던은 플레이오프 내내 브레드 유니폼을 입었고, 라커룸 바닥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경기 공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후 마지막으로 이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이 멋진 이미지로 인해 브레드 컬러는 다시 한 번 각광을 받았으며, 이후 출시된 모든 브레드 레트로 제품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별한 시즌
조던의 네 번째 NBA 우승은 시카고 불스의 기록적인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시카고 불스는 정규 시즌을 72승 10패로 마무리하며 20년간 깨지지 않을 기록을 세웠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올랜도 매직을 4-0으로 완파하며 전년도 패배를 설욕하는 등 네 번의 시리즈에서 단 세 경기만 패하는 성공적인 플레이오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조던은 캠페인 기간 동안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여 올스타전과 정규 시즌에 이어 파이널 MVP까지 휩쓸며 MVP 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놀라운 한 해를 통해 조던은 다시 한 번 농구계의 지배자로 자리매김했으며, 대회 내내 조던 11을 신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던 11은 농구화 역사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모든 시그니처 디자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농구화로 이 제품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는 이 결정을 가장 좋아하는 자식을 선택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강인함에서 강인함으로
인간 조던과 신발 조던 모두의 성공 이후, 둘은 점점 더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1996년, 에어 조던 11은 로우탑 버전인 에어 조던 11 로우 IE로 출시되었습니다. 두 가지 컬러웨이로 출시된 이 제품은 트레이드마크인 페이턴트 가죽 대신 코끼리 프린트 가죽과 메시 소재를 믹스하여 오리지널의 외관을 새롭게 재해석했습니다. 같은 해, 이 스니커즈는 영화 '스페이스 잼'을 통해 큰 스크린에 등장했습니다. 마이클은 벅스 버니와 애니메이션 친구들이 팀을 이루어 외계인 농구 선수들을 상대할 때 이 신발을 신었습니다. 디자인은 그가 94-'95 플레이오프 후반기에 신었던 것과 비슷했으며, 세련된 블랙 갑피, 화이트 미드솔, 반투명 블루 아웃솔이 특징이었습니다. 영화 개봉 당시 에어 조던 11 스페이스 잼이 일반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델의 팬들은 처음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2000년에 세 가지 OG 컬러웨이의 레트로 버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스페이스 잼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계속 성장하는 선수 명단
이후 조던이 워싱턴 위저즈에서 두 시즌 동안 신었고 지금은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2001년의 쿨 그레이 컬러웨이, 최초의 여성용 버전, 하이탑의 페이턴트 가죽으로 돌아온 여러 로우탑 등 새로운 디자인이 연이어 출시되며 에어 조던 11의 비옥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2006년 조던 6 모델과 함께 디파이닝 모멘트 팩에 포함된 스니커즈와 같이 이 시기에 출시되었던 많은 AJ11이 똑같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콩코드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조던의 시대를 정의하는 두 번째 3피트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디테일이 특징입니다.
홀리데이 전통
2008년 12월, 에어 조던 11 브레드는 카운트다운 팩의 일부로 재출시되었고, 2009년에는 스페이스 잼이 다시 한 번 출시되었으며, 그 인기는 이후 10년 이상 지속된 홀리데이 출시의 선례가 되었습니다. 매년 팬들은 12월에 출시될 클래식 모델의 레트로 버전이 될지, 이전 컬러웨이를 재가공한 버전이 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2011년의 충실한 콩코드 레트로, 2013년 조던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시절을 연상시키는 옅은 파란색 하이라이트가 돋보이는 감마 블루, 2014년 레전드 블루로 알려진 컬럼비아 에디션, 2001년 바시티 레드의 현대적인 버전인 2022년 체리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외에도 95-'96시즌의 놀라운 우승 시즌이 시작된 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2015년의 72-10, 조던 11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실버 디테일이 돋보이는 2020년의 주빌리와 같은 기념적인 디자인도 있었습니다. 조던 브랜드는 매년 AJ11을 기념하며 헤리티지 컬러를 되살리는 동시에 새로운 모델을 혁신적으로 선보이면서 스니커즈의 인기를 수년 동안 유지하고 심지어 성장시켰습니다.
스토리를 담은 신발
에어 조던 11의 놀라운 유산은 90년대 중반 마이클 조던의 뛰어난 복귀와 시카고 불스의 전례 없는 NBA 시즌을 통해 완성되었지만, 독특한 미학과 세련된 스타일링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니커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팅커 햇필드는 이 신발의 뛰어난 성능과 턱시도와 함께 신을 수 있다는 사실에 찬사를 보냈고, 팅커 햇필드는 이 모델에 기술적 우위와 독특한 외관을 부여한 대담한 디자인 접근 방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오늘날 조던 11은 패션과 스타일 그 이상을 상징하는 사랑받는 스니커즈로서 조던의 놀라운 컴백 스토리와 햇필드의 뛰어난 창의적 재능을 상징하며, 당시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역사의 한 순간이자 새로운 세대의 스니커즈 애호가들이 오랫동안 기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