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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e

Air Humara

모험심이 강한 영혼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Nike Air Humara
© Nike

높은 야망과 겸손한 직원

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나이키는 창립 첫 10년 동안 큰 성공을 거둔 운동화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하이킹 전담 부서를 설립하여 보다 견고한 신발을 실험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만드는 데 주력하는 Nike ACG(All Conditions Gear)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Nike는 더욱 다각화되었고, 1996년에는 디자이너들이 퍼포먼스 러닝화에 대한 전문성과 최근의 전 지형용 신발에 대한 관심을 결합하여 90년대 후반에 브랜드가 특히 애정을 가졌던 트레일 러닝화 시리즈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신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ike는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발 디자인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가장 기능적이고 기술적으로 능숙한 트레일 러닝화를 제작하는 파격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 겸손한 직원은 결국 브랜드 역사상 가장 시대를 초월한 두 가지 트레일 러닝 실루엣인 에어 후마라와 그 후속 제품인 에어 테라 후마라를 탄생시키며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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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디자이너

피터 포그는 항상 디자이너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점 교사와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느꼈고 학교에서 디자인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 한 수업에서 포그의 교수는 그가 자동차 스케치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서로 다른 도형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하여 틈새 없이 패턴을 만드는 기법인 테세리얼 디자인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교수는 포그에게 산호세 주립대학교의 디자인 과정에 진학하도록 안내했고, 포그는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젊은 디자이너는 스노클부터 전자 다리 게임, 심지어 보잉 737의 내부까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항공기에서 작업하던 중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고, 회복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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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의 복귀

병에 걸리기 전부터 자신의 커리어가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한 포그는 몇 달간의 치료를 마치고 디자인 분야로 복귀했을 때, 그 순간을 변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산호세 주립대 시절 동창이자 나이키의 신발 디자이너를 총괄하는 디자인 디렉터가 된 데이브 셰노네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Schenone은 그에게 채용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입사 지원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포그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당시 나이키에서 개발 중이던 신발과 롤러블레이드를 그리는 연습을 몇 차례 연기한 끝에 면접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신발에 가장 근접한 것이 스쿠버 다이빙 부츠였음에도 불구하고 포그는 그 일을 맡게 되었으니 그의 연습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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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과제

나이키에 도착하자마자 포그는 러닝 부서에 배치되었습니다. 1971년 빌 보워먼이 운동화의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와플 밑창을 디자인한 이래 러닝화는 나이키 성공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담과 기대가 함께 따라오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실제로 포그는 엔지니어 중심의 장기적인 비행기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대규모 팀의 일원이었다가 성능과 미학에 초점을 맞춘 신발을 개발하는 아주 작은 팀, 심지어는 혼자서 일하게 되면서 전환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 포그가 합류할 무렵 나이키의 경영진은 나이키를 단순한 신발 제조업체라고 부르지 않고 디자인과 마케팅 전문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나이키의 성공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 무렵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러닝 커뮤니티에서 좋은 품질의 트레일 슈즈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다른 유명 브랜드들이 이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야심에 따라 Fogg는 매력적인 미학을 갖춘 고기능성 신발을 제작하는 브랜드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트레일 러닝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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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후마라

이 작업에 만족한 포그는 디자인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트레일 러닝을 좋아하고 진흙탕에서 더트 바이크를 타던 시절 등 자신이 흥미를 느꼈던 것들을 디자인에 반영했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영향 중 하나는 멕시코 북부의 험준한 협곡에 사는 원주민 그룹인 타라후마라족의 플랫 샌들이 이미 1991년 나이키 에어 후아라체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타라후마라족의 정착촌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며칠 동안 험준하고 바위가 많은 환경을 통과해 최대 200마일을 달려야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를 가리키는 단어인 라라무리는 달리기의 유산과도 관련이 있으며, 장거리 지구력은 그들의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견고한 디자인

포그는 타라후마라에서 '후마라 '라는 단어를 가져와 신발에 적용하여 당시의 일반적이었던 무겁고 투박한 트레일 슈즈에서 벗어나 이 사람들의 운동적이고 강인한 성격을 구현하는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대신 러닝에 좀 더 초점을 맞춰 가볍고 기능적이면서도 편안한 착화감, 튼튼한 내구성,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두툼하고 접지력이 뛰어난 아웃솔에 앞발과 뒤꿈치에 양방향 그립 패드를 장착하여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 모두에서 착용자를 지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표면의 플렉스 홈은 우수한 수준의 기동성을 유지했으며, 앞발에는 줌 에어 유닛을, 뒤꿈치에는 캡슐화된 에어를 사용하여 바위, 돌무더기, 나무뿌리를 밟거나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에도 놀라울 정도로 편안한 착화감을 선사했습니다. 한편 발바닥 아치 아래에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트레일 러닝 엠블럼이 밑창의 중심을 이루며 신발의 용도를 당당하게 알립니다. 아웃솔과 마찬가지로 미드솔의 외부도 거친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는데, 초기 나이키 크로스 트레이닝화의 미드솔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텍스타일 랩으로 코팅되어 마모로부터 보호해 주는데, 트레일 러닝화에 이러한 소재가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포그는 내구성과 편안함을 위해 직물과 메쉬를 혼합하여 제작한 갑피를 디자인할 때 캠핑 텐트, 웨빙, 등산화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스포티한 외관을 완성하고 발에 부드럽게 밀착되도록 했으며, 고무 토캡으로 앞부분을 긁힘과 상처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발수 기능이 있어 습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으며, 독특한 웨빙 레이싱 시스템으로 격렬한 움직임에도 발을 안정적으로 잡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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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후마라

이러한 다양한 지원 기능을 갖춘 에어 후마라는 1997년에 출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이키의 ACG(올 컨디션 기어) 제품군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 시리즈와 잘 어울릴 수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트레일 러닝이었고, 포그 자신이 말했듯이 이러한 디자인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러닝화여야 했기 때문에 나이키의 러닝 부서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은 향후 ACG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으며 종종 ACG 라인의 일부로 간주됩니다. 1997년 겨울에 출시된 포그의 다음 스니커즈인 에어 테라 후마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테라 후마라는 오리지널 에어 맥스 95에서 영감을 받은 블랙 컬러의 강력하고 접지력이 좋은 아웃솔과 줌 에어와 캡슐화된 에어가 모두 포함된 미드솔을 장착했습니다. 뒤꿈치의 원형 창을 통해 에어백을 볼 수 있어 테라 휴마라는 에어백이 보이는 최초의 트레일 러닝화 중 하나입니다. 아웃도어 활동 중 펑크를 방지하기 위해 창은 미드솔 표면에서 뒤로 물러나게 배치하고, 안쪽의 창은 약간 더 작게 만들어 안정성을 강화했습니다. 갑피는 모터사이클에서 영감을 받아 안전성과 안정감을 주는 디자인으로 완성했습니다. 측면은 자전거의 바퀴를 닮았으며, 각 측면의 곡선 오버레이는 브레이크 디스크를 기반으로 하고, 스포크와 같은 일련의 손가락이 뻗어 나와 신발의 레이싱 시스템을 형성하며, 미드솔의 원형 에어 윈도우는 모터사이클에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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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광고

에어 테라 휴마라는 이전 모델보다 나이키의 ACG 컬렉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었는데, 테라라는 이름은 1991년 에어 테라 ACG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향후 브랜드 트레일 러닝화의 기반이 된 제품입니다. 또한 ACG 라인이 유명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유쾌하고 창의적인 광고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출시 당시의 한 포스터에는 신발의 관점에서 쓴 시 한 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매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공격적인 러그 아웃솔을 가지고 있다", "내 앞발과 뒤꿈치 에어솔 유닛은 푹신하다", "물은 흡수하지 않는 내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등 테라 휴마라의 견고한 특징을 나열했습니다. "나는 에어테라 후마라입니다."라는 대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나를 해칠 수 없다."라는 대사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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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사랑

포그의 에어 후마라와 에어 테라 후마라의 첫 번째 컬러는 산악 자전거와 기타 아웃도어 의류에서 영감을 받아 야외 활동 시 묻은 흙먼지를 숨기는 데 도움이 되는 어둡고 흙빛 톤을 사용했습니다. 두 모델 모두 기능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캐주얼 신발로 채택되기 시작했을 때 의외의 결과였는데, 특히 테라 휴마라는 코트니 러브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뮤직 스타들이 착용하면서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포그는 트레일 러너들만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러너가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보다 더 놀랐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그에서 트레일 러닝화를 라이프스타일 스니커즈로 바꾼 이 제품에 대한 에디토리얼 기사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디자이너는 더욱 깜짝 놀랐습니다. 1998년 5월에 발행된 이 기사는 포그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자세히 다루며 그의 독특한 배경과 기발한 아이디어, 다작의 창작물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신발에 대한 또 다른 영감인 스와치 시계의 내부 작동 방식을 공개하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곳곳의 유명 인사들의 발에서 테라 휴마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는 포그가 신발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나이키는 앞으로 그를 더욱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외에도 나이키가 패션과 기능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며 브랜드의 디자인 역량을 입증하는 순간으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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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개입

이러한 예상치 못한 관심 덕분에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포그의 트레일 러닝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휴마라가 개발 단계에서 거의 실패할 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사실입니다. 초기 디자인 과정에서 포그는 개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발이 있으니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포그의 마케팅 매니저는 에어 휴마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을 고수하고 생산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휴마라나 테라 휴마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이키의 트레일 러닝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두 실루엣의 인기를 고려할 때, 특히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번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한 오랜 성공을 고려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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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다시 돌아오다

휴마라 초창기에는 유명 인사들의 등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가져온 것은 콜라보레이션이었습니다. 2002년, 프래그먼트 디자인 창립자 후지와라 히로시, 선구적인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 미래의 나이키 CEO 마크 파커가 모인 강력한 HTM 팀은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두 가지 컬러웨이와 부드러운 가죽 갑피의 테라 휴마라를 출시하여 새 천년에 이 실루엣이 인기를 얻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후 2006년에는 협업 파트너인 스트리트웨어 및 스니커즈 편집숍 트루(True)의 이름을 따서 트루마라라는 이름을 붙인 좀 더 소박한 테라 후마라가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나이키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브랜드 창립 1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 레이저 카모 컬러웨이를 재출시했고, 이 신발의 팬층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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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레이션과 컴백

유명한 스니커즈 전문가이자 애호가인 게리 워넷은 피터 포그를 나이키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묘사하며 2010년대까지 휴마라라는 이름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에어 후마라의 부활을 이끈 것은 2017년 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이었습니다. 이 스케이트보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블루 라군, 액션 그린, 파이어 핑크의 생생한 톤과 세련된 트리플 블랙 버전의 네 가지 컬러웨이로 구성된 에어 휴마라 17을 출시했습니다. 각 제품은 전통적인 구조에 3M 반사 소재를 발가락과 뒤꿈치에 추가하여 더욱 실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트레일 러너는 기능성 아웃도어 신발에 대한 트렌드를 활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휴마라 제품군을 선보였고, 2022년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제품을 위해 나이키는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와 협업하여 우아한 라이트 본과 풍부한 에일 브라운의 두 가지 가죽으로 덮인 세련된 에디션을 제작했으며, 측면을 장식하는 작은 금색 스우시로 미니멀한 외관이 특징입니다. 그 뒤를 이어 생동감 넘치는 핑크 플래시 컬러웨이가 출시되었으며, 전체가 메시로 덮인 핑크색 갑피에 이전 두 개의 나이키 x 자크뮈스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우아한 브랜딩 효과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에어 테라 후마라는 언디피티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인기리에 돌아왔습니다. 이 스니커즈 스토어와 의류 브랜드는 오리지널 신발을 두 가지 컬러로 사랑스럽게 재탄생시켰습니다: 블랙과 아르케오 브라운 두 가지 색상으로 출시되었으며, 두 색상 모두 반사 디테일이 적용되었습니다. 고무 힐 카운터와 토 오버레이는 Fogg의 오리지널 영감을 반영하여 오토바이 타이어와 비슷한 거친 격자무늬 질감을 표현했으며, 2002년 설립 당시 언디피티드 첫 매장에 입점했던 HTM 스니커즈의 로고와 같은 위치에 브랜드의 플레이 더티 태그 라인이 등장했습니다. 2024년 초에는 눈에 띄는 청록색 라이트 멘타와 세련된 카고 카키의 두 가지 후속 컬러웨이가 출시되었으며, 두 제품 모두 이러한 독특한 디자인 디테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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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유산

나이키 에어 후마라는 피터 포그가 작업한 두 번째 신발에 불과했지만, 나이키의 매력을 널리 알리며 브랜드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수십 년간의 번영을 가져다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6년 동안 나이키 러닝 부서에서 Sertig, Albis와 같은 훌륭한 트레일 러닝화를 제작한 후, 포그는 ACG, 스포츠웨어 및 농구 부서에서 일하며 2002년 페가수스와 2013년 하이퍼덩크와 같은 상징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며 다재다능함을 입증하고 브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마라와 테라 휴마라는 착용자에게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적인 실루엣 덕분에 여전히 최고의 실루엣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열정적인 스니커즈 애호가들과 트레일 러너들의 컬트적인 추종자들로 구성된 마니아층은 기술력과 세련된 미학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제작자의 매혹적인 스토리를 통해 이 제품을 계속 수집하며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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